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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공기의 존재나 그 고마움을 모르듯이 우리들도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땅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많아서 우리 강산의 가치나 그 아름다움을 모르고 산다.



  체험적 경제이야기(2)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고문 고종환

체험적 경제이야기(2)


<식품업과 섬유업이 주류를 이른 때>  

우리나라가 절대빈곤을 해결하고 고도성장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것은 본격적인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2년부터인데 이때(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1962-66년) 정부는 주로 식량증산정책, 비료, 방직업 및 합성섬유ㆍ나일론사ㆍ정유ㆍPVC 세멘트 등의 기간산업 육성과 공업화 기반조성에 큰 비중을 두었다. 따라서 정부시책과 시대의 조류따라 식품산업이나 제분ㆍ제당ㆍ섬유업이 크게 흥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통치로부터 벗어나기 전까지는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였다. 해방이 된 뒤에도 식량사정은 별로 달라진 바가 없었는데 여기에 6ㆍ25동란까지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1950년대 말까지 국민의 식생활마저 충분히 해결되지 못하는 가난 속에 살고 있었으며ꡐ보릿고개ꡑ라는 절대빈곤 속에 허덕였다. 따라서 4ㆍ19혁명이후에 5ㆍ16을 거치면서 정부 차원에서 식량 자급을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이런 시대적 조류를 타고 성장한 기업이 식량을 위시한 식품산업분야의 기업들이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기업 및 식품하면 우선 삼양식품공업(주)의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떠오른다. 오랜 세월을 동안을 쌀을 포함한 잡곡 등을 전통적 식생활문화로 여겨왔던 한국사람들에게 제 2의 주식으로 등장한 라면은 가히 우리들의 식생활에 혁명을 일으켰다.
삼양식품이 오랫동안 시장을 독점한 것은 아마 싼 가격 때문일 것이다. 그때 시내버스 요금이 20원 정도라 짐작되는데 라면 값도 그 정도로서 저소득층에도 부담이 안 가는 가격이었으므로 급속한 성장을 했다고 본다.  
1969년 월남에 150만 불 어치를 수출한 것은 당시 획기적인 일이었다. 삼양에 이어 7~8개의 후발 경쟁업체가 생겼으나 롯데라면〔現(주)農心〕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기업체는 모두 도산했다. 그리고 꾸준한 성장을 계속하던 라면업계가 1970연대 말 침체의 국면에 빠지게 되자 (주)農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새기술을 도입하고 라면이라는 이름대신 "탕면"이라는 이름부터 차별화하고, 용기를 우리국민의 정서에 맞게 사발형으로 개발하여 사발면으로 제품선전을 강화하였으며, 맛도 얼큰한 맛으로 바꾸는 등 기업발전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 효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 공장의 새 설비를 소비자에게 직접 소개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품질의 차별화로 느낄 수 있도록 기업전략을 바꾼 것이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섬유업의 발전사를 살펴보니 해방 당시 남한에는 6개의 대규모 면방직회사가 있었으나 그 가운데 순수한 한국계 회사는 하나뿐이었고  그나마 일본 식민통치하의 일제를 위한 군수산업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선 한국의 면방직공업은 발전이 없었다.
그 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미국경제협조처(ECA)의 원조에 의해 원료와 기계설비의 교체가 이루어졌고, 공장에 자가발전기가 설치되면서 조업율이 향상되었으나 6ㆍ25동란으로 다수 파괴되었으나 빠른 복구사업이 이루어져 조업이 재개된 것은 남한이 목화재배지가 많고, 비교적 조업기술이 단순하여 단시일에 기능공 훈련이 가능하였고, 민족계열 기업인이 다수 참여하여 관리경험과 기술자들이 많았다는 점 등이다.

우선 식품업과 섬유업 등의 경우 시대의 흐름을 잘 판단하고 그때의 유망사업에 부응하여 성공한 그 전형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삼성그룹의 모체인 초기 삼성상회의 주요업종은 제분ㆍ제면업이었다. 그리고 사업이 궤도에 올랐을 때 조선양조(주)를 인수 경영했다. 조선양조(주)는 1950년 6ㆍ25동란 초기에 호황을 만나 단기간에 3억 원이라는 돈을 벌었다. 이에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무역업을 경영하여 큰 성공을 이룬다. 그리하여 1953년에 제일제당을 설립하여 제당업계의 선발주자가 되어 많은 이익을 얻었다. 후에 제당업계가 치열한 경쟁을 하게되자 과감히 변신하여 신규사업 분야로 진출하여 제일모직을 설립했다. 그 뒤 1970년도 후반부터는 모든 사업에 큰 변신을 하기에 이른다.
삼성그룹이 1960년대에 23억 7천 3백 만 원의 매출액을 올린 것의 바탕은 식품이 매출액의 34.6%, 섬유가 65.4%이었는데 그것은 1950년대의 유망
업종인 식료품업과 섬유업에서 확고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라고 본다.  

1965년부터 1991년까지의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변화를 조사한 어떤 기록을 보니 1965년대에 는 100대 기업에 들어가 있던 기업 중 1991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16개 밖에 안된다. 그런데 1965년 당시에는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대부분이 먹고 마시는 음ㆍ식료업과 섬유업 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매출액 순위로 제일제당 10위, 제일모직 15위, 삼양사 23위 등이었으나 1991년에는 제일제당이 41위, 삼양사가 69위, 제일모직이 88위 등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섬유업계의 태광산업의 경우는 매출액 64위였던 기업인데 1991년엔 97위로 떨어졌다. 이들은 내가 말하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따른 기업의 발전 단계 즉 산업의 추이가 먹거리→입성(옷)→주택→…등으로 변천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증거다.

                                                                           (2005. 02. 07 중소벤처신문 14면  게재)
풍토론(1) 한국의 자연과 인간
체험적 경제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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