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레얼연구원 ▒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동서고금을 통하여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사람은 왜-(무엇 때문에) 사는가"
그 의문의 궁극적 해답을 얻으려고 기나긴 시간을 쏟았고 엄청난 정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 질문은 그리스 신화 속의 시지프스가 마치 높은 바위산 기슭에 있는 큰
바위를 온힘을 다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바로 그 순간에 바위가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굴러떨어져 버리는 "하늘이 없는 공간, 측량할 길 없는 시간"과
싸우면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영겁(永劫)의 형벌"과 같은 것이 아닌가.
삶의 목적에 대한 해답은 시지프스의 신화 같은 헛된 수고인지 모른다.
그저 답이 없는 어려운 길을 더듬어 갈 뿐이다.



  부와 귀(富/貴)의 모범

* 진정한 부귀의 조건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누구나 부귀영화를 바란다. 그러나 진정한 부귀영화란 무엇인가를 심각히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근세 역사를 살펴보면 한국의 가장 훌륭한 부자가문은 경주 최부자 집안이고, 최고 명문 거족으로는 한국정부 수립이후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李始榮) 가문이다.
대체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자되기를 원하면서도 욕을 많이 하고, 누구나 높은 공직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시기하고 배척하기를 밥먹듯 한다.
그러나 이들 두 집안은 부자임에도 깊은 존경을 받았고, 벼슬이 높아도 질시 당하지 않고 우러러 칭송받은 집안이었다. 요새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쥐" 의 가장 바람직한 전형(典型)을 보인 집안이다.
최 부잣집은 그 부를 자그마치 12대 300년 동안 지켰던 만석꾼 집안이다. 300년 장수 기록은 세계적인 기록이다. 그래서 어떤 교수는 중세 이태리에서 르네상스문화의 발흥과 그 전성기의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지대한 공헌을 한 메디치 집안과 비교하기도 한다. 이태리의 메디치가(家)는  300여 년의 부와 영화를 누린 집안으로서 르네상스시대 건축조각미술 등의 분야에서 세계 문화적 자취를 남긴 천재들의 후원자로서 큰 역할을 했으며, 메디치 가문의 권력과 부를 바탕으로 해서 여러 명의 교황을 배출하기도 했다.  
경주 최 부자 집안은 "흉년에는 절대 땅 사지 마라" ,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는 조상의 유언을 철칙으로 준수하고, 그리고 자신들은 절약과 검소의 철학을 철저히 실천한 집안으로서 그 많은 재산은 사회를 위하여 보람 있게 쓰고 마지막엔 아낌없이 육영사업에 기부하였다.

이시영(李始榮. 1869~1953)의 집안은 조선 후기까지 10명의 재상을 배출했던 경주 이씨 백사공파(白沙公派) 가문으로서 조선의 귀(貴)를 대표하던 집안이었다. 이 집안은 일제 강점기에 명문가로서 일제에 훼절하지 않고 존귀함을 어떻게 지켰나갔는가 그 모범을 보여준 집안이다.
이시영가(家)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국권을 빼앗겨 망했을 때 모든 가족 - 60명의 대가족을 12대의 마차에 나누어 태우고, 1910년 겨울에 서울을 떠나 그 혹한의  만주로 망명했다. 망명을 주도한 사람은 넷째 이회영이었다.
그 형제들은 첫째가 이건영(李健榮.1853~1940), 둘째는 이석영(李石榮.1855~1934), 셋째 이철영(李哲榮. 1863~1925), 망명을 주도한 이회영(李會榮.1867~1932)이 넷째, 다섯째가 이시영(초대 부통령이 됨), 여섯째가 이호영(李頀榮.1875~1933)이었다.  
한국을 떠나면서 처분한 재산총액은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000억 원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 돈으로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여기에서 배출된 졸업생들이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 정규군을 대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 형제 가운데 5형제를 포함한 대다수의 가족들은 굶주림과 병, 그리고 고문으로 모두 중국에서 죽었다. 다만 이시영만이 유일하게 살아서 광복이 된 뒤에 귀국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은 저들의 사(私)를 버리고 공(公)을 위한 - "멸사봉공(滅私奉公)" 의 희생적 열매로 풍요를 누리고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개돼지 같이 살았던 인사들도 많았다.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야 생존에 급급해 세류에 따라 그리 살았다 해도 입만 열면 품위와 가문을 자랑하던 명문거족들은 어떤 꼴을 보였으며, 온갖 지식과 경륜을 내세워 나라를 걱정한다던 지성인지식인들은 또 어떤 추태를 부렸는가. 심지어 3 · 1운동의 주동자로서 변절한 자가 얼마였던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일제의 앞잡이 밀정이 독립운동가를 잡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가. 징용을 권장하며 우리의 젊은이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던 교육자, 문학가들. - 수많은 흡혈귀, 몸(민족)팔아 호강한 창녀 같은 부류들. 아직도 우리들의 역사청산은 요원하기만 하다.
무관심 "무관심의 결과는..."
부자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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